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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길 / 나인주 작가 조각 전시회
"삶의 흔적 담은 길 기록" - 정달식 기자
2012-12-25 [08:45:46] | 수정시간: 2012-12-28 [07:59:32] | 18면
▲ 나인주의 '도시(city)'. 갤러리 폼 제공.
수많은 집이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웠다. 한쪽 벽면을 보면 마치 부산의 산복도로 같은 풍경이, 또 다른 한쪽을 보면 도심 속 어느 한 공간이 펼쳐져 있는 듯하다. 10~30㎝ 정도 크기의 서로 다른 나무조각이 만들어 낸 공간은 그 속에 등장하는 게 동물(12지상)이라는 것만 다를 뿐, 우리네 삶의 공간과 너무도 많이 닮아 있다.
자투리 나무토막을 이용해 도시 속 삶의 공간을 우화적으로 담아내는 나인주(40) 작가의 작품이다. 그의 전시가 갤러리 폼에서 '길'이라는 이름으로 한창 전시 중이다.
이번 전시는 그가 요 근래 많은 작업을 해 왔던 인정 넘치는 산동네 풍경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잡한 도심의 공간도 함께 그려냈다.
작가는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따뜻하고 정이 넘쳤던 공간과 현재 내 작업장이 있는 민락동 주변을 오가며 보았던 길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소위 과거의 길이자, 현재의 길이라고 할 수 있죠"라고 했다.
종전 작품이 감천마을을 비롯한 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영향으로 산동네의 풍경 묘사에 치중했다면, 이번엔 도심 속에 모세관처럼 뻗어 있는 도시의 수많은 길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거시적이고 다소 추상적인 공간으로부터, 미시적이고 아기자기한 삶의 자리로의 이동이라고나 할까?
실제, 전시 작품을 보면 광안리 해변가의 쭉 뻗은 길도 있고, 자동차로 붐비는 길도 있다. 산동네처럼 보이는 곳에는 가다가 막힌 길, 둘로 나뉘는 길, 갑작스러운 지름길도 표현돼 있다. 또 등굣길도 있고, 버스정류장 앞길, 누군가를 기다리는 길도 있다.
광안리 해변가의 길 속엔 분명 낯익은 건물들도 보인다. 호텔 '호메르스'도 있고 방파제가 있는 쪽으로는 '민락회타운'이라 쓰인 건물도 보인다. 실제 있는 공간을 그대로 묘사한 셈이다.
왜 그는 길에 주목했을까? 대답은 단순했다. "길은 살아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죠. 그만큼 삶의 흔적도 남아 있고요. 도시가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어 과거의 흔적과 지금의 모습을 기록처럼 남기고 싶었습니다."
작가는 버리거나 사용하고 남은 자투리 나무토막을 주워 그 위에 천연페인트 채색을 해 집이나 상점 등으로 표현했다. 때로는 나무 표면을 사포로 문지른 후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고, '빈티지한 맛'을 살리기 위해 나무껍질이나 나뭇결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채색하기도 했다. 빽빽하게 있는 동네의 집들을 벽면에 다 붙여서 전체가 하나인 것처럼 보이게 해, 옹기종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강조했다.
특이한 것은 작가가 구현해 놓은 공간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분명 사람의 형상인데 얼굴은 동물이라는 것. 작가는 도시 사람들의 모습을 쥐나 토끼, 소, 돼지, 말, 용 등 12지상으로 표현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은 진지함 속에 우화적이면서도 동화적인 느낌을 살짝 감춰 놓은 듯하다.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나인주의 나무토막 작품을 통해 추운 겨울, 포근한 삶의 온기를 느껴 보는 것은 어떨지…. ▶길=2013년 1월 21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우동 갤러리 폼.
051-747-5301. 정달식 기자 do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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