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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달동네, 이제는 예술공간

 

산복도로 인상 바꾼 어린왕자...세상과 감천마을의 연결고리죠

[중앙일보] 입력 2017.02.03 00:06 수정 2017.02.07 19:23 | Week& 4면 지면보기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이 일군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은 소위 말하는 달동네였다. 태극도마을이란 이름으로 존재했을 당시엔 폐가가 즐비하고 우중충한 분위기가 물씬 났던 곳이 2009년 감천문화마을로 새로 태어났다. 사하구가 달동네를 문화마을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각종 정부부처의 도시 재생 관련 사업 예산을 받아 벽화를 그리고 설치 작품을 들여놓은 후 지명도 바꿨다. 재생 사업에 방점을 찍은 건 4년 전 시작한 ‘빈집 레지던시 감내풍경 프로젝트(이하 빈집 레지던시)’다. 사하구는 승효상·조성룡·김인철·프란시스코 사닌 등 유명 건축가에게 의뢰해 폐가 여섯 채를 예술가의 작업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을씨년스럽던 폐가는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2015년 11월 이 건물들에 예술가가 입주해 창작활동을 시작했고, 지금은 방문객과 마을 주민에게 무료로 갤러리를 개방하고 있다. 고단한 삶의 흔적을 품은 감천문화마을은 지금 부산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축·예술투어 여행지로 떠올랐다.
 


 

마당으로 이뤄낸 공공성의 회복 - 독락의 탑·색즉시공


건축가 승효상이 리모델링한 ‘독락의 탑’. 건물 외관에 나무 막대기를 촘촘히 둘러 마치 커다란 새장 같다.


건축가 승효상과 김인철이 각각 설계한 건물 ‘독락의 탑’과 ‘색즉시공’을 관통하는 테마는 ‘공공성의 회복’이다. 두 건축가는 빈집을 리모델링하면서 건물 옆에 주민들이 모여 교류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었다.


마을을 통과하는 메인 도로를 끼고 있는 독락의 탑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집 두 채를 연결해 만든 건물인데 어느 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형태가 달리 보인다. 도로에서는 마당을 끼고 있는 2층짜리 단독 건물로 보이지만 도로보다 낮은 지대에 있는 골목길에서 건물 뒤편을 바라보면 단층건물과 2층 건물이 가운데 계단을 통해 연결된 것을 알 수 있다.

2층 건물 바로 옆에 마련된 마당은 본래 단층건물의 옥상이었다. “산기슭에 들어선 마을이라 마당 같은 공동체를 위한 공공영역을 얻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지붕 위를 평지로 만들고 길과 연결시켜 공공성을 확보했다”는 승효상의 말처럼 독락의 탑 마당은 감천문화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전망이 좋아 주민은 물론 관광객이 몰리는 마을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독락의 탑’에는 판화작가 위길호씨가 입주해 있다.


현재 독락의 탑에는 감천항을 주제로 판화와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위길호씨가 머물고 있다. 입주 초반 3개월 간 공간 구성을 고민했다는 위씨는 “건축가가 공간을 만들고 입주자가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비로소 건축물이 완성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건축가 김인철의 ‘색즉시공’.


김인철이 설계한 건물 ‘색즉시공’은 마을에서도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마을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하늘마루’ 전망대를 지나 골목길을 따라 계단 수십 개를 올라야 했다. 지난해 11월 색즉시공에 입주한 아르메니아 태생의 회화작가 티그란 아코피얀과 전시 기획자이자 아내인 최혜정씨가 반갑게 맞아줬다. 4년 전 부산에 정착했다는 티그란씨는 “감천문화마을이 상상 속 이상향과 닮았다”며 “마을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층건물인 색즉시공은 옆으로 길쭉한 우유 곽 모양이다. 이전 건물의 골격을 고스란히 살려 리모델링해서 갤러리 공간 70%, 작가의 주거 공간 30%로 구성했다. 판판했던 옥상을 뾰족한 지붕으로 바꿔 층고를 높이고 벽 곳곳에 창을 낸 덕분에 햇빛을 고스란히 담는다. 규모는 작아도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색즉시공은 담으로 둘러쳐져 있지만 외부와 아예 단절된 공간은 아니다. 어른 가슴 높이로 쌓은 담을 넘어 내부가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레지던시 바로 옆에 있는 너른 마당 역시 김인철씨가 설계했다. 마을 주민이 자유롭게 교류하도록 만든 공간답게 전시와 공연 등이 수시로 열린다.


 


 

골목 풍경을 담은 공간 - 공공의 방·


 

 

 

 

 

 

 

 

 

 

 

 

 


독락의 탑과 색즉시공이 외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외향적 공간이라면 ‘공공의 방’과 ‘별 계단 집’은 내성적인 성향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우선 위치를 보자. 도로변에 위치한 독락의 탑, 마을 전경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색즉시공과 달리 공공의 방과 별 계단 집은 골목 깊숙이 숨어있다. 자동차로는 접근이 불가능하고 오로지 도보로만 갈 수 있다.

독락의 탑에서 나와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조형물을 지나면 산비탈을 오르내리는 계단이 나온다. 황토색으로 바닥을 칠한 계단을 따라 20~30m 쯤 내려와 왼편으로 방향을 틀자 공공의 방이 모습을 보였다.

 


공공의 방을 설계한 미국인 건축가 프란시스코 사닌이 주목한 것은 마을 곳곳에 난 골목길이었다. 사닌은 소통의 공간인 동시에 단절의 공간이기도 한 골목길을 집의 일부로 흡수했다. 골목길에서 공공의 방을 바라보면 1층 작업실이 가장 먼저 보인다. 작업실에는 통유리창이 달려 있는데 날이 따뜻할 때는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건물 뒤편에 숨겨진 정식 출입문 대신 작업실의 이 통유리창을 통해 건물로 들어온다. 내부공간과 골목길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공공의 방에 입주한 나인주 작가는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풍경이 전혀 달라지는 신기한 집”이라며 “테라스에서는 그림처럼 고요한 마을 전경이, 1층 통유리창을 통해서는 골목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화면 속 영상처럼 펼쳐진다”고 말했다.
 

건축가 조성룡이 설계한 ‘별 계단 집’은 독립된 두 채의 집으로 이뤄져있다.

 
건축가 조성룡씨가 설계한 별 계단 집은 빈집 레지던시 중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별이 잘 보이는 곳인가 싶어 동행한 정승교 사하구 창조전략계장에게 이름의 유래를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집 바로 옆에 있는 계단 이름이 ‘별 보러 가는 계단’이에요. 계단이 하도 가팔라 오르는 길에 머리가 핑 돌아 별이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지요.”

 

‘별 계단 집’에는 화가 김량경씨가 입주했다.

 


각각 독립된 집 두 채로 구성된 별 계단 집은 앞서 본 레지던시 세 곳과는 달리 작가의 개인공간과 작업실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입주 작가 김량경씨를 따라 내부를 둘러봤다. 유난히 창이 많았다. 김씨는 “시간 때마다 빛을 담아내는 창도 달라진다”며 “빛이 하도 강해 전시해 놓은 작품의 색이 바랠 정도”라고 말했다. 각기 다른 모양의 창은 담아내는 풍경도 제각각이다. 별 보러 가는 계단 쪽으로 낸 창은 고단한 주민들의 일상을, 건물 앞 골목으로 낸 창은 관광객들의 상기된 표정을, 그리고 가장 높은 쪽에 난 네모반듯한 창문은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하루 웬 종일 생중계한다.

“이 집은 정말 오묘해요.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까지 집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집에 들어와서 새삼 느꼈어요. 하늘이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인간의 표정과 몸짓이 얼마나 다양한지를요.”




글=홍지연 기자 jhong@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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